본문 바로가기

리뷰/극장판리뷰

원더풀 데이즈 : 감탄을 자아내는 이미지, 허공을 떠다니는 서사

 

 

 


 


원더풀 데이즈

(Wonderful Days (Sky Blue))

감탄을 자아내는 이미지, 허공을 떠다니는 서사

 



 

 

 11년 전 개봉한 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두고 아직까지도 많은 얘기가 오간다. 이는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그에 따른 여파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작품 내, 외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흥행 여부와 업계에 끼친 영향과는 별개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드물었던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점, 2D와 3D, 그리고 실사 미니어처를 배합해 눈부신 영상미를 선보였다는 점에 있어서 의의를 갖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로지 <원더풀 데이즈>가 선보이는 이미지를 평가하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 이미지들은 <원더풀 데이즈>를 돋보이게 하는 일등공신이며 애니메이션의 비주얼적 측면에서 상당한 쾌거를 이룩해내었다.




 그렇지만 <원더풀 데이즈>는 분명 비판받을만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미지만으로 소비되는 매체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원더풀 데이즈>는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는데에는 성공했음에도 정작 서사의 진행에서는 전개에 요구되는 정밀함을 놓치며 서사적 깊이와 전반적인 이야기의 통일성을 해치고 말았다. 우선 <원더풀 데이즈>는 스토리 전개의 과정에서 결말을 풀어낼 수 있는 두가지 가능성을 설정해놓았다. 하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환경 파괴와 그에 대한 성찰, 다른 하나는 피지배 계급의 지배 계급에 대한 투쟁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이 둘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원한 모양이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흐지부지 된다. 수하는 환경을 되찾겠다는 일념, 즉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는 것이 투쟁의 근본적 목적이다. (에코반 출신인 그의 배경이 영향을 준 탓도 있다.) 반면 레지스탕스인 '핫도그' 일당들은 마르에 대한 에코반의 차별에 분개하여 에코반 전복과 마르의 해방을 위해 싸운다. 둘 중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받쳐주어야 할텐데, 두 이야기가 서로 앞에 나서려한다. 결과적으로 수하의 이야기와 핫도그의 이야기는 좀체 한 곳으로 모이지 못한다. 마르를 밀어버리겠다는 에코반의 결단이 양 쪽에 극적 계기를 마련해주긴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들 각자의 목적의식을 강화하는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후반부 전개 과정에 이르러서도 그렇다. 핫도그는 동료 데이빗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하고 수하는 우디의 총상을 계기로 각성한다. 이 굵직한 두 이야기가 한꺼번에 나오는데 이 둘이 마치 한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각자를 각성시켜 묘하게 눈속임해버린다. 심지어는 양 쪽이 향하는 시선도 달라서, 핫도그는 에코반 자체에 초점을 두고 수하는 에코반 내 중에서도 주로 시몬에 초점을 두는데 말이다. 물론 그것을 총체적으로 모으면 에코반에 대한 적개심이지만 그 적개심의 밑바탕은 엄연히 다르며, 따라서 둘의 협력은 어색하다. '목적은 조금 어긋날지라도 우리는 하나'라고 말하기에도 핫도그와 수하와의 관계는 더 설명되지 않고 그나마 보이는 관계 역시 그다지 깊지 않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 얘기만 하려 들다보니 이 묘사 자체는 아예 뭉뚱그려진다. 수하와 핫도그, 그 사이에서 이야기는 따로 놀아버리고, <원더풀 데이즈>는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중간에 수하, 제이, 시몬 세명 사이에 얽힌 로맨스가 클리셰처럼 따라와 그 이야기마저 방해해버린다. 삼각관계 역시 유연하지 못해서 시종일관 지리하고 평면적인 관계성(캐릭터가 그렇다는게 아니다)을 드러내다 결정적인 순간 이유 없이 그 관계를 틀어버리기도 한다. 흐름으로 따졌을 때 기존 진행에 어떠한 기초적 장치로서만 작용해야할 로맨스가 이토록 진지하게 끼어드니 기존 스토리라인은 방해받게 되고 그나마 이어가던 투쟁의 과정마저 중심을 잃게 된다. 게다가 그 로맨스는 시몬으로 하여금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감동적(?)인 최후를 맞도록 강요하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어설픈 악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수하는 제이와 이어지고 에코반은 무너지며 하늘은 파란색을 되찾는다는 결말이 한데 모여 우스꽝스러운 마무리를 내고 만다. 질문은 여러가지인데 그에 대한 확답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결말로 몰아가려는 것은 억지다. 서투른 배합의 결말이 그러하니 '<원더풀 데이즈>가 잡으려 하는 포인트는 이러이러하다'라는 파편만이 둥둥 떠다니고 만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아내려는 욕심 탓에 그 어느 것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이는 얄팍한 주제의식의 묶음과 지극히 평면적인 갈등구조, 허공에 뜬 서사로 이어져버렸다.




<원더풀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적인 고유의 미학이 뚜렷하면서도 서사적 미학에 있어서는 총체적으로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자연스레 관객은 이 애니메이션을 두고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결말에는 투쟁에 대한 승리의 환호도, 깨끗한 하늘을 되찾은 쾌감도​, 사랑의 맺음을 통한 애틋함도 남지 않는다. 어느 하나 영화에서 제대로 회수한 감정이 없는 탓이다. 감정 회수의 실패는 라스트씬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애니메이션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씬, 그러니까 공해가 걷히고 펼쳐지는 하늘을 담아낸 씬을 보면서도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지 못하고 "아 하늘이다"라고만 인식하는데에 그친다. 파편이 되어버린 이야기가 허공을 맴도는데 그마저도 어떤 파편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으니 의도했던 '명장면'도 옅어지고 만다. <원더풀 데이즈>의 서사는 분명 실패한 서사다. 길지 않은 런닝타임에 한데 모아놓으려는 과욕, 그마저도 쉽게 쉽게 가려는 과욕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이미지는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미지 안의 세계는 지나치게 어수선하다.

 


총 평 : 4 / 10